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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 수원성 - 본문

유네스코 세계 유산/한국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 수원성 -

앵글메이커 2008. 8. 1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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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선왕인 영조의 둘째왕자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의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의 팔달산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되었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의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 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咆)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수문 1,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이 소멸되고 4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성곽의 전돌, 건조물의 기와 등이 독특한 방법으로 제작되어 있어 현재의 기술로 이를 재현하기 어려워 보수시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계속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을 만들었으며, 또한 수원화성은 철학적 논쟁 대신에 백성의 현실생활속에서 학문의 실천과제를 찾으려고 노력한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벽돌과 돌의 교축, 현안·누조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방법 등은 동양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서 희대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하여 축성하였기 때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 (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18세기에 완공된 짧은 역사의 유산이지만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약 6km에 달하는 성벽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모든 건조물이 각기 모양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등록기준 : 세계문화유산기준 (Ⅱ), (Ⅲ)
(Ⅱ)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건축, 기념물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유산
(Ⅲ)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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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성

1.팔달문
2.남포루
3.화양루
4.서남암문
5.서포루
6.서장대
7.서노대
8.서포루
9.서북각루
10.화서문
11.서북공심돈
12.서북포루
13.장안문
14.동북포루
15.화홍문
16.방화수류정
17.각건대
18.동북공심돈
19.동장대
20.동북노대
21.창룡문
22.동포루
23.동1포루
24.봉돈
25.동2포루
26.동남각루
27.남공심돈


- 화성-

1. 팔달문 (보물 제402호)
팔달문은 수원성의 남문으로 규모와 형태면에서 장안문과 거의 같다. 성문의 육축(陸築)은 일반 성벽과 달리
안팎을 석재로 쌓아올리는 협축방식으로 두껍고 높게 축조한다. 육축에 쓰인 돌은 일반 성돌보다 규격이 큰
무사석을 사용하고 중앙에 홍예를 낸다.

- 팔달문과 옹성(보물 제420호)
팔달문은 장안문과 함께 성문앞에 또 한겹의 성벽을 쌓아서 문을 보호하는 시설인 옹성을 육축과 달리 전으로
쌓아 적의 포에 한 번에 무너지지 않도록 대비하였다. 모양이 독을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하여 항아리 옹자를
넣어 옹성(甕城)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옹성벽에 반복되는 세로줄은 현안으로 짙은 그림자를 남기는 세로줄이
 강하게 그어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 팔달문의 지붕과 공포
팔달문은 우진각지붕으로 용마루 양 끝에서 45도 각으로 내려오는 추녀마루의 긴 경사선을 갖는다. 지붕의 각
선은 직선이 아니고 조금씩 위로 상승하는 휘어진 곡선으로 이 선들이 모여 장중한 외관을 이룬다.

- 팔달문의 홍예
일반적으로 옹성의 출입구는 두 문이 일직선상에 올 때 밖에서 성안이 들여다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한쪽편에
치우친 곳에 내어 성문과 옹성문이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장안문과 함께 팔달문은 일직
선상에 놓이도록 하였는데 이는 화성의괘에 의하면 "....이제는 사통하고 팔달한다는 뜻을 따서 일직선상에
놓이도록 하였다."고 하여 수원성이 단지 안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리고 뚫리는
개방적인 성임을 알 수 있다.





2. 남포루
남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성과 유사하게 하면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그 안에 화포를 감추어 두었다가 적을 공격하도록 만든 것이다. 벽체에 자란 담쟁이덩쿨이 총혈과 포구마져 가려버려 전시라면 공격이 더욱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3. 화양루
서남각루를 일명 화양루(華陽樓)라고도 하는데, 성의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지고 높은 지점 경치 좋은 곳에
따로 우뚝 서 있다. 정면 2칸이고 측면 3칸으로, 앞의 4칸은 바닥에 전돌을 깔아 삼면을 개방하였고 뒤의 2칸은
방을 들였다.

이 서남각루가 위치한 곳은 이른바 용도라고 하여 양쪽으로 성가퀴를 쌓고 그 사이에 군량을 운반하기 위한
길을 좁고 길게 낸 곳으로 서남암문의 밖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서남각루는 바로 이 용도 끝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 건물은 경관을 즐기기 보다는 방어의 요충을 견고히 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건물 자체는 미적인 조화를 잃지 않고 있으면서 요충지의 군사적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4. 서남암문
암문에는 일반적으로 위에 건물을 세우지 않는데 서남암문에는 포사를 세웠다. 이곳은 팔달산 한쪽의 높은 곳으로서의 서남방향 중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므로 적을 감시하는데 유리하므로 특별히 시설한 것이다.



5-8. 서포루
수원성에는 포루(鋪樓)가 5곳에 설치되었다. 포루는 다산이 수원성을 계획할 때 가장 강조한 방어시설 중 하나이다.



6. 서장대

팔달산의 꼭대기에 사방이 잘 보이는 곳에 정면 3칸, 측면 2칸 중층건물로 안쪽에 마루를 깐 높은 바닥은 장수가 좌정하여 군사를 지휘하는 장소이다. 건물의 2층은 사방 각 1칸이다.




7. 서노대

노대란 바깥이 잘 내다 보이는 성안 높은 곳에 대를 설치해 놓고 성밖동정을 살피다가 바깥의 움직임에 어떤 변화가 있을 때 이를 깃발신호를 통해 성안에 전달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며 근처에 서장대가 있다.




9. 서북각루

각루는 본디 성의 네 모서리에 누각을 세워서 사방을 관찰하기 위한 시설로 수원성은 지형의 특성을 잘 살린 성곽이므로 지세를 살펴 각루의 효과가 가장 큰 곳-동북, 서북, 동남에 지었다. 서북각루는 화서문 바로 남쪽에 위치한다.




10. 화서문 (보물 제403호)

화서문은 수원성의 서문으로 북서쪽에 치우쳐 있다. 창룡문과 함께 화서문은 장안문이나 팔달문 보다 격을 한단계 낮춘 것으로 팔작지붕에 익공식 공포, 문루도 정면 3칸에 단층건물이다.




11.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은 우리 나라에 유일하게 조성된 예로서 수원성을 인상깊게하고 수원성축조를 주도한 18세기 지식인들의 정신세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건물이다. 『무지비』의 공심돈과 적대를 절충하여 성곽내 본성의 성벽에 공심돈을 쌓은 것이다.

수원성에는 3개의 공심돈을 만들었으나 남공심돈은 일찍이 건물이 사라졌는데 서북공심돈과 비슷한 구조를 갖추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2. 서북포루

서북포루는 장안문 가까이에 위치한다. 포루에는 좁은 구멍을 내어 밖에서는 안으로 공격할 수 없게 하고 안에서는 밖을 향해 포나 총을 쓸 수 있도록 총안과 포혈을 만들었다. 포루의 삼면에서 접근하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공격형이라고 할 수 있다.




13. 장안문

장안문은 수원성의 북문으로 서울을 향하고 있다. 돌로 높이 쌓은 육축 중앙에 홍예문을 내고 육축위에는 2층의 누각을 세우고 앞쪽에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다. 문의 좌우에는 높은 위치에서 적을 공격할 목적으로 성벽보다 돌출된 적대가 있다.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식 공포를 결구한 우진각 지붕의 2층 목조건물이다. 반원형의 옹성은 성문과 달리 벽돌로 쌓았으며 아치의 상부에는 오성지라는 구멍이 5개 뚫린 일종의 물탱크가 있는데 이는 적이 불을 지를 때를 대비하여 만든 것이다.




14. 동북포루 (각건대)

동북포루는 각건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으로 지세가 갑자기 높아져서 용두를 굽어보는 곳에 위치하였다.




15. 화홍문

수원성을 흐르는 물은 용연에서 물이 한 번 휘돌아 나와 북수문을 거쳐 남수문을 지나 빠져 나가게 되어있다. 북수문은 7개의 홍예문을 내었는데 홍예하단의 지대석이나 돌기둥중 물살과 마주치는 것을 마름모꼴로 면을 다듬어 물살이 좌우로 갈라지게 되어 있다. 수문위로는 돌로 다리를 깔고 그위에 누각을 세워 화홍문이라 하였다. 화홍문은 수문쪽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만든 주각으로 수문 바깥쪽으로는 여담을 쌓았다. 원래 성바깥쪽으로 판문을 달고 짐승의 얼굴을 그려 놓았었으나 복원하면서 그리하였는지 판문을 달지 않았다.




16.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은 기존목조건축의 구조를 살리면서 벽돌을 조화롭게 혼용하여 새로운 조형을 창출한 벽돌과
목조구조가 결합된 대표적인 예이다. 벽돌과 목재의 조화는 기단과 하층벽체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석재로
기단벽면의 테두리를 짜고 그 테두리 내부를 벽돌로 채워 넣는 기단의 형식으로『화성의궤』에서 '벽체석연'
이라는 명칭으로 설명하였다. 방화수류정이란 '꽃을 찾고 버들을 쫓는 정자'라는 뜻으로 각루의 기능을 생각하면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그러나 이곳의 원래 이름이 동북각루로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절벽아래의
용연과 함께 경치 또한 좋은 곳으로 휴식처일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는 감시하기 적합한 곳이다.





18. 동북공심돈

공심돈은 전시에 사용되는 관측소로써 위,아래에 구멍을 많이 뚫어서 바깥동정을 살필 수 있을 뿐아니라 총포를 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성벽 상부에 3층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에는 군사들이 몸을 가리게 되어 있다.

동북공심돈, 서북공심돈 두 곳 모두 백자총과 불랑기등을 발사 할 수 있도록 총포구멍을 내었고 외부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상층과 중층사이에는 문을 달아 사다리로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들었고 내면에는 작은 문을 설치하였다.




19. 동장대

수원성의 군사시설중 가장 위용이 있고 군사지휘소의 으뜸이 되는 곳이다. 평상시 군사들을 훈련하고 지휘하는 장대이다. 경사진 지면을 3단으로 나누어 대를 쌓고 제일 높은 대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전각이다. 건물바닥은 한칸씩 뒤로 가면서 높아지도록 하였는데 제일 앞칸은 전돌을 깐 바닥이고 가운데 칸은 마루를 깔았다. 제일 뒤쪽칸 역시 마루인데 주변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현재 동장대앞은 수원시내의 대표적인 활터로 쓰이고 있다.




20. 동북노대

노대란 쇠뇌를 쏠 수 있게 만든 곳으로 창룡문과 동북공심돈의 중간에 동북향으로 자리잡은 동북노대는 전돌을 쌓아 네모꼴의 대로 만들었는데 모서리를 깍아 모를 없앴다.




21. 창룡문

동문인 창룡문은 규모도 작고 형태도 간략한 편이다. 역시 옹성이 있는데 아치문이 정면에 있지 않고 서울의 동대문처럼 왼쪽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다.




22. 동포루

포루는 치성과 형태는 비슷하나 돌출된 성벽내부를 비워 내부를 2층으로 꾸미고 여기에 군사들이 각종 포루를 가지고 공격할 수 있도록 꾸민 것으로 포루의 외벽에는 바닥에서부터 수많은 총구멍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포루의 벽은 적의 포격에 한 번에 부서지지 않도록 모두 벽돌로 꾸몄다. 성벽과 같은 높이에 외벽은 모두 판문을 대고 거기에 짐승얼굴을 그려 넣은 팔작지붕을 한 건물을 설치하였다.




23. 동1포루



24. 봉돈

봉돈은 창룡문과 팔달문사이의 동남쪽에 성안에 위치한 행궁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봉돈은 행궁을 지키고 성을 파수하며 주변을 정찰하여 인근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다섯 개의 연기를
뿜어내는 연기구멍이 갖추어져 있는데 보통때는 남쪽의 화두만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봉돈은 성벽을 따라
조성되었는데 성벽의 일부를 치성처럼 밖으로 약 6.5m 돌출시키고 인접한 성벽높이까지는 성벽과 동일하게
돌로 쌓고 그위로 전돌로 쌓고 상부에 여담을 두었다.




25. 동2포루



26. 동남각루

동남각루의 위치는 동쪽에서 성벽이 일직선으로 오다가 갑자기 지형이 밑으로 떨어지면서 성벽이 서쪽으로 꺽이는 곳이다. 가파른 막돌계단이 이를 입증한다. 건물의 방향을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에서 각각45도 틀어지게 잡았다.




27. 남공심돈

남공심돈은 남암문의 동치(東雉) 위에 세워져 있다. 제도는 대체로 서북공심돈과 같고 규모가 약간 작다. 꼭대기에 건물을 지었는데 판문을 달지 않고 사방을 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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