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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 전격 분석

앵글메이커 2008. 8. 3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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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제작 기술의 궁극을 지향한다, <킹덤 오브 헤븐 : 감독판>

 

50여분의 추가된 본편

 

 본편 재생을 시작하면, 영화사 로고와 제작사 로고 화면이 나온 후 배경 자막-영화 제목이 나옵니다. 그리고, 빌리안의 부인을 묻는 사제 일행이 등장합니다. 부인을 묻다가 마을로 진입하는 십자군 일행을 본 사제는 부인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살한 시체이니 꼭 머리를 자르라는 이야기를 남긴 후 십자군 일행과 마을로 들어가죠. 도끼로 시체의 목을 자르는 순간 바로 빌리안이 대장간에 망치를 내리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빌리안이 일하는 장면을 몇 장면 보여준 후 마을에 도착한 십자군이 빌리안에게 편자를 박아달라고 합니다. 그 이후 고프리가 빌리안에게 스타워즈 패러디(‘I’m your father’)를 시도하며 함께 떠나자고 꼬시지만, 거절 당합니다. 그 날 밤 빌리안은 옆에서 깐죽대던 사제가 부인의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에 분노해서 달궈진 칼로 사제를 그대로 쑤셔버리죠. 그러고 나선 고프리에게로 도망칩니다.

영웅서사시의 도입부로서 매우 전형적인 스토리지만, 왠지 뜬금없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꽤나 차분하게 보이던 빌리안이 갑자기 사제를 죽이는 장면이 특히 더 그렇죠. 이랬던 도입부가 감독판에선 어떻게 바뀔까요?

먼저 감독판의 시작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인사말입니다. 스스로 감독판의 의의에 대해 설명합니다. 단순히 시간만 늘린 버전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그 이후에는 OVERTURE입니다. <킹덤 오브 헤븐>의 신비한 성가풍 테마가 흘러나오며 잠시 시청자로 하여금 영화에 빠져들 수 있게끔 분위기를 환기시켜 줍니다(이 부분은 2번째 디스크의 시작부분도 비슷합니다. 그 땐 간주곡으로 시작합니다).



영화사 및 제작사 로고가 나온 후 배경 자막-제목이 나오는 것은 같습니다. 처음 시체를 묻는 장면에서도 약간의 대화가 더 들어 있습니다.



응? 대사를 보면 이 시체가 신부님 형수랍니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 여기서부터 감독판에 대해 약간 생각을 달리 하기 시작합니다.





신부와 영주간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를 보면, 현재 빌리안이 구금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동생이라는 신부는 형을 꺼내 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빌리안의 자살한 처의 모습입니다. 영화상에선 시체로만 잠깐 등장했지만, 이렇게 빌리안의 회상씬을 빌어 살아있는 모습도 공개가 되는 군요. 빌리안은 이렇게 구금되어 있다가 영주의 지시로 풀려납니다.



마을로 돌아간 십자군 일행은 영주와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영주와 고프리도 역시 형제지간이군요. 영주는 고프리가 죽으면 예루살렘 영지는 자신의 것이 되는 것에 기뻐하며, 그 이야기를 자신의 아들에게 합니다. 물론, 결국엔 헛물만 켜게 되겠지만요.




마을로 돌아온 빌리안은 거의 제 정신이 아닙니다. 대사 한마디 없이 고뇌하는 형에게 오히려 동생은 비난을 퍼붓습니다.





고뇌 끝에 죽어버린 자신의 아이 옷을 불에 태우며 첫 대사를 합니다. 일을 한다. 이후에 날이 밝고 다음날에 되어서야 빌리안의 대장간에 십자군 일행이 도착합니다. 물론 동생인 사제의 소개로 말이죠.





동생은 옆에서 열심히 설레발을 쳐댑니다. 누구보다 쓸모 있다고 떠벌리는데, 여기에는 당연히 불순한 의도가 들어 있습니다. 보기 싫었던 형을 원정으로 보내버리면, 현재 형의 재산은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죠. 다른 한편으론, 이런 경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이후의 공성전에서의 활약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됩니다. 극장판의 빌리안은 그저 평범한 대장장이였을 뿐이지만, 감독판에서의 빌리안은 참전경험이 있는 베테랑 솔저입니다.


 

고프리도 예전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 군요.

 

이 후에 고프리가 빌리안에게 고백을 한 이후 떠나고, 그 날 밤 동생이 찾아와서 대화끝에 살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물론, 동생은 감독판에서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형의 화를 돋굽니다. 왜 내가 형 갈 수 있도록 다 세팅을 해두었는데 가지 않았냐고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빌리안이 고프리에게 도망친 이후 영주가 보낸 추격대가 나타났을 때 감독판에선 아무 말도 없이 먼저 고프리 일행 한 사람을 화살로 쏴서 죽인 다음 대화가 진행됩니다. 쫓아온 사람은 고프리의 조카이자 영주의 아들이죠. 결국 빌리안을 데려온다는 것은 핑계였고, 영주 역시 자신에게 올 유산을 주지 않고 떠나버리는 형에 대한 원망으로 추격대를 조직했다는 이야깁니다. 고프리가 추격대와 싸움을 벌이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죠.

이렇듯 극장판과 감독판의 도입부는 커다란 차이를 보입니다. 극장판에서 단지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사제는 원래는 빌리안이 마을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중요한 캐릭터였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은 빌리안이라는 인물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겠죠. 이런 식의 이야기와 캐릭터의 확장을 감독판 전체에서 계속 확인할 수 있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은 올해, 아니 21세기 들어 발표된 모든 할리우드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작품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영화는 ‘가치중립적’ - 보다 정확히는 ‘가치모호적(굳이 말을 만들어 낸다면!)’ - 인 색채를 띠었기 때문이다. <킹덤 오브 헤븐> 제작 당시 조언자로 참여했던 하미드 다바시(이슬람 문화에 대한 권위자, 현재 콜럼비아 대학 교수)는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킹덤 오브 헤븐>이 표방하는 정서는 반 이슬람적인 것도, 친 이슬람적인 것도 아니다. 나아가 이 영화는 반 기독교적인 영화도, 친 기독교적인 영화도 아니다.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십자군’에 관한 영화 또한 아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리들리 스콧이 - 그리고 할리우드가 - 중세 십자군 원정에 관한 서사극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모든 이들이 우려했던(그리고 동시에 ‘기대했던’) 요소들을 철저히 배반(혹은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이 작품이 중세사를 바라보는 서양 지식인의 보편적 시선에서, 그리고 ‘할리우드적인 시선’의 속박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작품이라고 평가 절하할 수는 있을지언정, 다바시 교수의 지적이 여러 면에서 놀랍도록 날카로운 것이라는 점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한’ 정서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극단적으로 양분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만일 리들리 스콧이 <킹덤 오브 헤븐>을 통해 던지고자 한 도덕적 교훈이 있다면 - 그것을 억지로 끌어내 본다면 - 그것은 “‘천국행 티켓’을 표방한 십자군 원정의 추악한 실상” 따위의 통속적인 화젯거리가 아닌, 바로 이것이다. “지금은 ‘타협의 시대’다. 야만적인 전쟁보다는 떳떳한 타협이 훨씬 영예스러운 것이다. 인간은 자신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가치관을 가진 이와도 평화를 이룰 수 있다” 기실 <킹덤 오브 헤븐>의 아이디어는 리들리 스콧 자신의 매우 ‘소년스러운’ 판타지에서 비롯됐다. 서양식 남성 판타지의 궁극적 형태라 할 수 있는 ‘기사’에 관한 거대한 서사극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근 20년 가까이 리들리 스콧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이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때는 할리우드에서 <클레오파트라>나 <아라비아 로렌스>와 같은 전통적인 스펙터클 서사극이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간주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2003년, 피터잭슨의 <반지의 제왕 3: 왕의 귀환>을 기점으로 할리우드의 전통적 장기였던 스펙터클 서사극은 - 디지털 특수효과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 찬란히 부활했다. ‘신세대형 디지털 스펙터클 서사극’의 출발점인 <왕의 귀환> 이후 할리우드는 <트로이>, <알렉산더> 등을 통해 ‘오직 미국에서만 제작 가능한 초대형 테크놀로지 서사극 장르’를 질적으로 향상시키려는 실험을 꾸준히 감행해왔다. 일찍이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이러한 장래의 기류를 예언한 바 있는 리들리 스콧은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오랜 꿈을 현실화할 적기라 판단하고 드디어 칼집에서 칼을 빼들었다. <킹덤 오브 헤븐>은 말하자면, 이러한 할리우드의 혁명적 ‘실험’이 거의 끝 단계에 이르렀음을 증명하는 바로미터와도 같은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이 자신의 ‘기사 이야기’를 담기 위한 그릇으로 택한 역사적 제재는 바로 십자군 원정이었다. 헌데, 하필이면 200여년에 달하는 십자군 원정 기간 중 그가 고른 시점은 두 번째 십자군 원정과 세 번째 십자군 원정 사이의 기간인 1184년에서 1187년에 이르는 때이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이 시기에 펼쳐진 사건들이 매우 흥미로운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영화적/상업적’으로 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영화의 중심에 자리 잡은 사건은 기 드 루시앵이 이끄는 비타협적 기사단이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에 의해 괴멸당하는 ‘하틴의 곶’ 전투가 아니라, 발리안이 이끄는 소수의 비정예부대가 살라딘의 엄청난 대군에 맞서는 부분이다. 문제는 이 전투가 어느 한 편의 완전한 승리나 패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느끼기에는 ‘시시하기 짝이 없는’) ‘타협’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논리로 볼 때, 이 사건을 영화적 소재로 - 그것도 1억불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되는 초대형 영화의 소재로! - 택했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관객이 클라이맥스 신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는 ‘당위성’은 전통적으로는 ‘흑백논리’와 ‘대결 구도 및 갈등의 완벽한 해결’을 통해서만 획득된다고 여겨졌다. 리들리 스콧은 이러한 대작 상업영화의 철칙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리고 이 ‘무모한(?) 결정’은 영화 전체의 색체를 단번에 규정해버렸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색깔을 지닌 서사극인 동시에, 가장 색깔 없는(것으로 여겨지는) 서사극이 되어 버린 것이다.

리들리 스콧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킹덤 오브 헤븐>은 근본적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갖추기 어려운 영화이며, 설사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도 관객이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는 매우 버거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스펙터클 대작’이라는 영화 고유의 장르적 특질(그리고 이 장르에 대해 관객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기대감’ 혹은 ‘선입견’)은 이런 영화의 문제점을 더욱 부각시켰다. 윌리엄 모나한의 각본은 그 자체로 매우 완성도 높은 것이었으나, 문제는 ‘끼워 맞추기 방식’으로 작성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모나한의 각본은 뚜렷한 기승전결을 가진 이야기를 원전으로 하여 각색한 것이 아니라, 결말이 모호(?)한 역사적 사건이 부각되도록 주인공과 사건들을 역으로 재배치한 것이다.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그의 각본은 - <글래디에이터> 때 데이빗 프랜조니가 그랬듯 - ‘역사의 왜곡’으로 읽힐 가능성이 있었고, 인위적으로 연결된 인물들 간의 관계 및 갈등구도 역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화끈한 결말 -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관계없이 - 을 고대한 관객 및 플롯상의 뚜렷한 인과관계와 인물 발전상을 중요시하는 관객과 평론가들, 그리고 기독교 신도와 이슬람교 신도들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최악의 작품’이 될 위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들리 스콧은 ‘타협’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를 연출함에 있어 이런 모든 위험 요소들을 무릅쓰고 철저하게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했다. 만일 이 영화를 ‘성공작’으로 평가한다면, 그 성공요인은 우선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 영화를 ‘실패작’으로 낙인찍는다면, 역시 그 실패 원인을 이런 야심 찬 노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기적 서사구조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은 <글래디에이터>와 <블랙 호크 다운>을 거치며 ‘역사적 사건을 다룬’ 대작 영화를 연출하는 자신만의 연출 철학을 확고히 다졌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바라보는 그의 위치는 한 치도 흔들림이 없다. “나는 극영화 감독이지, 다큐멘터리 감독이 아니다” - 리들리 스콧. 그러나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가 영화를 연출함에 있어 가장 중요시 한 것은 바로 ‘정확성’이다. <글래디에이터>가 그랬듯, <킹덤 오브 헤븐>의 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역사의 왜곡’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리얼리즘적 허구’다. 역사적 리얼리즘에 관한 한 리들리 스콧이 내세운 목표는 관객이 영화의 이야기를 실제의 역사로 믿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이성을 분해하고 그들을 스크린 너머 펼쳐지는 가공의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역사적 고증(‘믿음직한 허구’를 만들기 위해!)이 필수적이었다. <글래디에이터> 제작 때 옥스퍼드 대학의 권위자를 초빙해 철저한 사전 고증을 했던 것처럼, <킹덤 오브 헤븐>의 이야기를 꾸며내는 데에도 전문가들의 고증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본격적인 프로덕션 단계에 이르러 리들리 스콧과 윌리엄 모나한은 이미 ‘십자군 원정 역사’에 관한 전문가가 돼 있었다. <킹덤 오브 헤븐>의 전반부는 중반 이후 전개될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을 주도할 캐릭터들을 규정짓기 위한 예비서술 부분으로, 물론 철저한 허구다. 그러나 스크린에 비치는 인물들의 복장이나 생활상, 소품들은 모두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게 재현된 것이다. 가공의 인물 막시무스(사족들 2번 항목 참조)를 주인공으로 했던 <글래디에이터>와는 달리, <킹덤 오브 헤븐>의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실존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적으로 부각됐던 중요한 특징들(‘볼드윈 4세’가 문둥병 환자였다는 점이나 ‘기’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점과 같은)만을 살려둔 채 교묘하게 왜곡됐다. 이를테면,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인 발리안의 경우는 혈통 자체가 뿌리째 바뀌어 버렸다. (발리안은 대장장이와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며, 그의 아버지는 고프리가 아니다. 고프리는 1차 십자군 원정 때 활약한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차용해 만든 허구의 캐릭터다.) 또한 발리안과 시빌라 사이의 로맨스도 완전한 허구이며, 시빌라와 기의 관계 역시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묘사됐다. 이 모든 왜곡은 물론 억지로 짜 맞추어진 플롯 상의 요소를 긴밀하게 하기 위한 매개물의 역할을 한다. 영화가 개봉한 후 특히 화제가 된 것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에 관한 묘사였다. 발리안 측의 인물들과는 달리 살라딘의 됨됨이와 그에 관한 일화(하틴의 곶 전투 이후 포로로 잡힌 ‘기’에게 얼음물을 나눠주는 것과 같은)는 대부분 왜곡 없이 전문가의 고증을 충실히 반영해 표현됐다. 서양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관용과 자비, 인내심을 갖춘 뛰어난 지도자’로 묘사된 그의 모습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기 드문 이례적인 이미지였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일리스트’로서 스콧의 재능은 <킹덤 오브 헤븐>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영화가 그가 꿈꾼 ‘궁극적 서사극’의 비주얼을 완벽히 구현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적어도 그가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킹덤 오브 헤븐>의 압도적인 이미지에 경도되어 ‘역시 리들리 스콧!’을 외친 관객들만큼이나 <트로이>와 같은 ‘아류(?) 디지털 서사극’과 <킹덤 오브 헤븐>의 비쥬얼 사이의 근본적 차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혹평을 퍼부은 이들 역시 많다는 것이다. 물론 리들리 스콧의 추종자와 일부 평론가들은 이것을 “관객들이 <왕의 귀환> 이후 쏟아진 신종 스펙터클 서사극들의 이미지에 길들여져 분별 감각이 무디어진 탓”이라고도 설명한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킹덤 오브 헤븐>이 추구한 비쥬얼의 독특한 특질에 있다. 영화를 반복감상한 분은 대부분 공감하시겠지만, 이 영화의 비쥬얼은 (상당히 가쁜 호흡으로 전개되는 플롯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정적이다. 심지어 극도의 스피드감을 강조한 액션 장면들에서 조차 여타의 액션 영화에서 맛보기 힘든 ‘정중동’의 무브먼트가 느껴진다. 이 놀라운 무브먼트는 플롯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페이소스를, 때로는 에로티시즘을, 그리고 때로는 호흡 곤란증을 유발할 정도의 경이감을 유발한다. 유려한 활동 이미지가 발산하는 이러한 감흥들은 리들리 스콧의 전작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정제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리들리 스콧이 궁극적으로 목표했던 것, 그러니까 단순히 ‘시각적 쾌락’을 선사하는 데 머무는 비쥬얼이 아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그 자체로 독립된 감흥을 선사하는 네러티브의 핵으로서의 비쥬얼’의 구현이 거의 완성 단계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MTV적 감각의 스피디하고 현란한 영상전개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눈에 이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무브번트로 보이기도 한다. 결국 일부 관객들에게 ‘지루하다’라는 혹평을 들은 것은, 어찌 보면 - 플롯의 전개 차원을 떠나 - 이 영화의 비쥬얼이 지닌 고유의 속성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한 셈이다.

 

압도적인 AV퀄리티




근래 개봉한 대작 영화 중 이 작품만큼 색감이 진하게 표현된 영화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 느끼기 힘든 강렬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리들리 스콧의 영상 컨셉이 충실히 반영된 결과다. 이에 따라 이 영화는 대단히 독특한 화면 톤 및 질감을 선보이고 있는데, 문제는 이로 인해 영상이 전체적으로 어둡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밝고 화사한 영상을 특별히 선호하는 관객 분들은 극장 관람 때부터 이 영화의 영상에서 이유모를 답답함을 느끼셨을 터, 그 원인은 바로 이런 영상 컨셉에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햇빛 쏟아지는 날의 발랄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생각하시기 바란다. 본 타이틀의 특이한 색감은 리들리 스콧이 구상한 이미지가 전달하는 정서적 감흥을 극대화하기에 가장 적합하도록 조율된 것이다. 따라서 간혹 어두운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고 ‘기계적인’ 불평을 하실 필요는 없다. (영상 컨셉에서 짐작할 수 있듯, 본 타이틀의 영상의 경우는 암부의 표현이 ‘뭉개진’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안보이도록’ 표현된 것이다.)


 

그러나 ‘취향 상’ 본 타이틀의 어두운 색톤에 불만을 가진 분이라고 해도, 영상 자체의 퀄리티가 출중한 수준이라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것이다. 본 타이틀의 영상은 D2D로 제작된 픽사의 애니메이션 타이틀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되고 정제된 입자 표현 상태를 보여준다. 감상자가 시각적인 ‘불안감’을 느낄 장면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떨림 현상 및 잡티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특유의 디지털 노이즈가 간혹 눈에 띄긴 하나, 이마저도 위력적인 색감으로 인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시종일관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공격적인 색감이 펼쳐지는데, 디지털 색보정의 결과가 매우 탁월하여 화려함과 통일감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디테일의 묘사도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하여, 기사들의 쇠사슬 갑옷의 올 하나하나에서부터 각종 무기의 문양 및 녹, 인물들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까지 표현이 쉽지 않은 요소들이 모두 완벽하게 구현된다. 클라이맥스 공성전 장면의 디테일 묘사는 본 타이틀 영상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데, 역동적인 부분에서도 입자가 흐트러지는 등의 부작용은 전혀 발견할 수 없으며 밤 장면과 낮 장면 구분 없이 또렷한 표현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살라딘이 이끄는 대군의 깃발 표현 상태는 그 자체로 전율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감흥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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